
올여름,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직장인 A씨는 방학 시작과 동시에 ‘여름방학 숙제 해결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ChatGPT가 독후감도 대신 써준다”는 소문을 접했다. 반신반의하며 ‘어린이 말투로, 『마당을 나온 암탉』 독후감 1,000자 작성해줘’라고 입력하자, 몇 초 만에 완성된 글이 화면에 떴다. 띄어쓰기, 문법, 문장 구조까지 완벽했다. 아이에게 프린트를 건네주자, 아이는 “이렇게 쉽게 되는 거냐”며 의아해했다.
이 상황은 결코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2025년 여름방학, 대한민국의 많은 가정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기, 독후감, 탐구 보고서, 심지어 가정통신문에 써야 할 ‘학부모 의견’까지 생성형 AI가 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사이의 과제가 집중적으로 AI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양상이다.
가장 흔한 유형은 독후감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주제와 길이, 말투를 입력하기만 하면 몇 초 만에 출력된다. 내용은 충실하고 구성도 그럴듯하다. 문제는 그 글이 학생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의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고, 감상을 고민하며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교육 현장에서는 심각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사는 “이름만 바꾸면 똑같은 독후감이 여럿 제출돼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AI가 써준 글은 말투와 어휘가 비슷하고, 문장 구조가 일정해 비교적 쉽게 걸러낼 수 있다. 그러나 학년이 낮거나, 교사가 디지털 도구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에는 분별이 어렵다. 일부 교사들은 AI 탐지 툴을 따로 도입하거나, 자필 독후감 또는 구술 요약을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AI로 만든 숙제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편리함과 윤리적 부담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다. 맞벌이 부부들은 “어차피 형식만 중요한 숙제인데 AI로 돕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입장을 보인다. 특히, 아이가 한글 타자에 서툴거나, 책을 끝까지 읽을 인내심이 부족할 경우 “AI가 방향을 잡아주면 아이가 덜 힘들어한다”는 식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학습 효과를 완전히 무시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AI가 제공하는 글을 베껴 쓰는 순간, 아이의 사고력은 정체되며 글쓰기 실력은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고, 자신의 언어로 감상을 풀어내는 훈련은 단순히 국어 실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고력을 키우는 데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중학생들 사이에서는 독후감뿐 아니라 탐구 보고서, 과학 실험 관찰일지, 영어 일기까지 AI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어떤 학생은 “보고서를 AI가 쓰고, 번역기를 돌려 영어로 바꾼 뒤 다시 AI가 다듬은 문장으로 제출한다”며 친구들에게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교사는 번역기 특유의 문장 구조나 지나치게 유창한 표현에서 이상함을 감지하지만, 모든 숙제를 일일이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흐름에 일부 학교는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독후감을 대신해서 책 속 명대사를 정리하거나,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방식의 창의 과제를 도입하기도 하고, 발표 수업과 구술 평가 비중을 늘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AI로 쓴 글을 감별해주는 툴이 상용화되면서, 고등학교와 대입 논술 관련 학원에서는 이를 반영한 첨삭 지도를 시작한 곳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육 방식의 전환보다는 가정에서의 인식 변화다. 방학 과제는 평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력을 키우는 기회다. 아이가 문장을 서툴게 쓰더라도, 거기에는 부모가 대신 써준 문장보다 더 많은 성장의 흔적이 담겨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AI가 써준 글을 들고 학교에 간다. 말끔한 문장 속엔 생각이 없다. 숙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AI는, 그 과정에서 아이가 배워야 할 ‘표현의 힘’을 빼앗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멈출 수 없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아이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단 몇 분의 편리함 대신, 서툴지만 아이가 직접 쓴 한 문장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게 진짜 아이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