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폐스펙트럼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병’이 아니다. 최근 들어 성인기까지 진단받지 못한 채 살아온 이들이 뒤늦게 자폐스펙트럼 특성을 인지하고 진단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사회생활에서 ‘일반인’으로 간주되며 살아왔다는 점이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 오히려 ‘무례하다’, ‘눈치 없다’, ‘이상하다’는 낙인을 쓰기도 쉽다.
■ 성인 자폐스펙트럼의 대표적 특징
성인 자폐스펙트럼의 핵심은 두 가지다. 사회적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관심사다. 성인은 아동과 달리 표현이 억제되거나 사회적으로 학습한 ‘마스킹(masking)’이 있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첫째,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어색함을 보인다. 눈맞춤이 자연스럽지 않고, 대화 중 상대의 의도나 감정을 파악하기 어렵다. 풍자나 비유, 돌려 말하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며, 대화 맥락을 놓치는 일이 잦다. 이런 모습은 직장 내에서 ‘눈치 없고 답답하다’는 인상을 준다.
둘째, 반복적 행동과 특정 주제에의 몰입이다. 이들은 익숙한 루틴을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며, 예기치 않은 일정 변경이나 업무 지시에서 불안을 느낀다. 특정 관심사에 깊게 몰입하며, 그 주제를 집요하게 이야기하거나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행동이 반복된다.
셋째, 감각 처리의 차이다. 밝은 조명, 소음, 특정 냄새 등에 과민하거나 반대로 반응이 느린 경우도 있다. 이런 감각 민감성은 회의실, 사무실, 야외 행사 등 사회적 공간에서 피로도를 높인다.
■ 사회생활에서 ‘티 나는’ 순간들
자폐스펙트럼은 진단명이 붙기 전까지는 주변에서 쉽게 눈치채기 어렵다. 하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그 특성이 도드라진다. 특히 직장 내에서 다음과 같은 모습이 반복되면 오해가 생긴다.
- 회식이나 친목 자리에서 대화 흐름을 자주 놓치며, 어색한 말투나 반응을 보인다
- 잡담 중에 깊이 있는 기술적 이야기나 관심사로 대화 방향을 틀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든다
- 업무 지시가 구체적이지 않으면 혼란을 느끼고, 질문을 반복하거나 업무를 잘못 수행한다
-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느리거나 지나치게 불안해하며 루틴이 깨졌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 감각 민감성으로 인해 이어폰 착용, 조명 조절, 자주 자리 이탈 등이 잦다
이러한 특성은 단지 ‘사회성 부족’이 아니라 신경발달적 차이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문제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 조직 내 시선이다. 이처럼 ‘적응 못 하는 직원’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자폐스펙트럼이 겪는 이중고는 시작된다.
■ 무조건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선 안 되는 이유
이들은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 깊은 몰입과 전문성을 보이며, 반복적이고 세밀한 작업에 강점을 보인다. 시간 관리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고, 사실과 규칙에 기반한 업무에서 신뢰도가 높다. 변화가 없고 구조화된 환경에서는 오히려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눈치’, ‘관계’, ‘분위기 파악’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쉽게 불이익을 받는다. 이는 자폐스펙트럼 당사자에게 사회생활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 성인을 위한 실질적 대처와 지원 필요
성인 자폐스펙트럼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기이해와 환경 조정이다. 루틴 유지, 감각 자극 최소화, 예상 가능한 일정 관리 등은 큰 도움이 된다. 대화에 앞서 사전 주제를 공유하고, 비유나 추상적 표현을 피하는 등 실질적 전략도 필요하다.
둘째는 조직의 인식 전환이다. 눈에 띄는 장애가 아니더라도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신경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성과 위주의 평가가 아닌, 일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선행돼야 한다.
사회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를 가진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선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구조적 이해가 필요하다. 성인 자폐스펙트럼은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다르게 세상을 인식하고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