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식 시계는 손목의 움직임으로 태엽이 감겨 작동한다. 그래서 ‘오토매틱(Automatic)’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시계를 자주 착용하지 않으면 며칠 안 가서 멈춰버리는 경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오토와인더(Watch Winder) 다. 단순한 보관함 같지만, 내부에는 정교한 기계 구조가 숨어 있다. 오토와인더가 무엇이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또 꼭 필요한지 알아보자.
◆ 오토와인더란 무엇인가
오토와인더는 기계식 자동시계를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도록 회전시켜주는 장치다. 내부에 모터가 내장돼 일정 주기로 시계를 회전시키며, 마치 사람이 손목에 차고 움직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시계의 로터(rotor)는 움직임이 있을 때만 회전하며 메인 스프링을 감는다. 따라서 시계를 서랍에 넣어두면 며칠 안에 멈추게 된다. 오토와인더는 이 과정을 대신 수행해주는 ‘자동 운동기’ 역할을 한다.
◆ 왜 필요한가
- 시계의 정확도 유지
기계식 시계는 멈춘 상태로 오래 두면 윤활유가 한쪽으로 쏠리거나 굳어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오토와인더는 내부 기어가 일정하게 움직이게 하여 시계의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 캘린더 기능이 있는 시계에 유용
데이트, 데이, 문페이즈, 연도 표시 등이 있는 시계는 멈추면 모든 표시를 다시 맞춰야 한다. 복잡한 퍼페추얼 캘린더나 월드타임 시계라면 조정에 수십 분이 걸리기도 한다. 오토와인더를 사용하면 이런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 보관 중에도 미적 효과
유리 커버를 통해 시계가 천천히 회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시계 애호가들은 오토와인더를 일종의 ‘디스플레이 케이스’로 사용하기도 한다.
◆ 작동 원리와 구조
오토와인더 내부에는 저속 모터와 회전 플레이트가 있다. 여기에 시계를 고정하면 플레이트가 좌우 혹은 양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며, 시계의 로터가 움직여 태엽이 감긴다.
제품마다 회전 방식이 다르다.
- 시계 방향 회전(Clockwise)
- 반시계 방향 회전(Counterclockwise)
- 양방향 회전(Bi-directional)
대부분의 현대 자동시계는 양방향 감김 구조를 가지고 있어, 오토와인더 역시 양방향 회전이 가능한 모델이 선호된다.
◆ TPD(회전 횟수) 설정이 중요한 이유
오토와인더에는 ‘TPD(Turns Per Day, 하루 회전 횟수)’라는 설정값이 있다. 이는 하루에 몇 번 시계를 회전시킬지를 뜻한다. 브랜드나 무브먼트에 따라 권장 TPD가 다르다.
예를 들어,
- 롤렉스(3135 무브먼트) : 650~800회/일
- 오메가(8500 시리즈) : 700~900회/일
- 태그호이어, 세이코 일부 모델 : 650회 전후
너무 많이 돌리면 부품 마모가 빨라지고, 너무 적게 돌리면 완전히 감기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시계 무브먼트에 맞는 TPD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오토와인더의 종류
- 싱글 와인더
한 개의 시계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형태. 크기가 작고 가격이 저렴하다. - 멀티 와인더
2개 이상 시계를 동시에 보관·회전시킬 수 있다. 시계 애호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형태로, 보관함 겸용으로 디자인된 고급형이 많다. - 프로그래머블 와인더
각 시계별로 회전 방향, 속도, 휴식시간 등을 개별 설정할 수 있는 모델. 고가이지만 다양한 브랜드의 시계를 함께 관리하기에 적합하다.
◆ 전원 방식
대부분의 오토와인더는 AC 어댑터로 작동하며, 일부는 배터리 겸용이다. 배터리형은 휴대가 간편하지만, 장시간 사용 시 모터 회전력이 약해질 수 있다. 장기 보관용이라면 전원 어댑터형이 안정적이다.
◆ 오토와인더, 꼭 써야 할까?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건 아니다.
-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착용하는 시계라면 굳이 오토와인더가 없어도 충분히 감긴다.
- 자주 착용하지 않지만 캘린더 기능이 복잡한 시계, 또는 여러 개의 시계를 번갈아 착용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하다.
오랫동안 시계를 방치해야 한다면 오토와인더보다 정기적인 수동 감기나 전문점 보관 서비스가 더 안전할 수 있다. 오토와인더는 전자기기이기 때문에 장시간 과회전이 반복되면 오히려 시계 부품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 오토와인더 사용 시 주의사항
- 시계 제조사별 권장 TPD를 확인하고 설정할 것
- 과도한 회전은 금지, 무브먼트에 맞춰 적정 회전만
- 습기, 열,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장소에 보관
- 장기 미사용 시 내부 모터에 윤활유가 굳을 수 있으므로 가끔 작동 점검
- 퀵셋(Quickset) 날짜 기능이 있는 시계는 자정 무렵 회전하지 않도록 설정
특히 기계식 시계는 미세한 충격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값싼 비정품 와인더의 진동은 오히려 시계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 오토와인더 선택 팁
- 정숙성: 모터 소음이 적을수록 좋다.
- 회전방향 설정 기능: 좌·우·양방향 모두 지원되는 제품이 이상적이다.
- 개별 설정 가능 여부: 여러 개의 시계를 관리할 경우 필수 기능이다.
- 내부 마감 품질: 고급 와인더일수록 자석 차폐, 가죽 인테리어, LED 조명 등 세심한 마감이 돋보인다.
◆ 오토와인더는 ‘사치품’이 아니라 ‘관리 도구’
오토와인더는 단순히 시계를 멋지게 전시하는 도구가 아니다. 태엽 감김, 오일 순환, 시계 컨디션 유지 등 본연의 기능적 목적이 있다. 특히 고가의 기계식 시계를 여러 개 소유한 사람이라면 오토와인더는 필수 관리 도구에 가깝다.
결국 중요한 것은 빈번한 사용보다 정확한 이해와 올바른 설정이다. 오토와인더는 시계를 대신 돌려주는 장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면 ‘시계를 망치는 기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