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맥주병은 꼭 갈색일까?”… 유리색깔에 숨겨진 과학적인 이유

“왜 맥주병은 꼭 갈색일까?”… 유리색깔에 숨겨진 과학적인 이유

마트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때 유심히 보면 대부분의 병이 ‘갈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간혹 녹색병이나 투명병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색은 단연 갈색이다. 단순히 전통적인 디자인이나 브랜드 이미지 때문일까? 사실 그 속엔 맥주를 지키기 위한 과학적 이유가 숨어 있다.

◆ 빛에 약한 ‘맥주’… 자외선이 맥주의 적이다

맥주는 홉(hop), 보리, 효모, 물로 만들어지는데, 이 중 맥주 특유의 쌉쌀한 향과 맛을 결정짓는다. 그런데 홉에는 **루풀론(lupulone)**과 **후물론(humulone)**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 이 성분들이 햇빛이나 형광등의 **자외선(UV)**에 노출되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스컹크 냄새’**라 불리는 불쾌한 냄새가 난다.

이 현상은 실제로 ‘라이트 스트럭(light struck)’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빛을 맞은 맥주는 상해서 맛과 향이 변질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맥주라도 보관 중 빛에 노출되면 특유의 풍미가 사라지고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 맥주병이 특정 색을 사용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 갈색 유리는 자외선을 막는 ‘필터 역할’

유리병의 색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보호막의 기능을 한다. 갈색 유리는 자외선을 약 98% 이상 차단할 수 있어, 맥주의 변질을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반면 녹색 유리는 약 80%, 투명 유리는 10% 정도밖에 차단하지 못한다.

즉, 같은 맥주라도 갈색병에 담으면 훨씬 오래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형 양조장들은 빛 차단 효과가 가장 뛰어난 갈색병을 기본 포장재로 선택한다.

◆ 그럼 녹색병 맥주는 왜 존재할까?

그렇다면 왜 어떤 맥주는 여전히 녹색병을 사용할까? 대표적인 예로 하이네켄이나 칭다오, 카스 일부 제품이 있다.

이유는 주로 브랜딩과 마케팅에 있다.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리 원자재가 부족해, 당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던 녹색 유리를 대체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녹색병이 ‘프리미엄 맥주’의 상징처럼 굳어지면서, 브랜드들은 색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게 된 것이다.

최근엔 녹색병을 쓰는 브랜드들도 빛 노출을 줄이기 위해 UV 차단 코팅 처리알루미늄 캔 포장 전환을 병행하고 있다.

◆ 투명병 맥주는 가장 취약하다

가끔 투명병에 담긴 맥주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빛에 매우 약하다. 투명 유리는 자외선을 거의 걸러주지 못하기 때문에, 냉장보관 상태가 유지되지 않으면 빠르게 산화된다.

그래서 투명병 맥주는 대부분 유통기한이 짧고, 안정적인 보관 환경이 필수적이다. 특히 유리병 맥주보다 캔맥주가 더 신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루미늄 캔은 빛을 완전히 차단해 내용물이 변질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 빛만이 아니다, 산소와 온도도 중요

맥주는 자외선뿐 아니라 산소와 온도 변화에도 약하다. 한 번 개봉한 맥주는 산소가 들어가면서 빠르게 산패가 진행되고, 향이 날아간다. 또 냉장보관이 아닌 실온 상태에서 장시간 노출되면 발효 성분이 변해 맛이 탁해진다.

그래서 맥주 애호가들은 “좋은 맥주는 빛, 열, 공기를 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갈색병은 이런 세 가지‘빛’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과학적 선택이다.

◆ 캔맥주가 늘어난 이유도 같은 맥락

최근 몇 년간 국내외 맥주 시장에서는 병맥주보다 캔맥주가 주류가 됐다. 이유는 명확하다. 캔은 빛을 100% 차단하고, 산소 투과율도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볍고 운반이 쉽고, 재활용률도 높다.

맥주의 본고장 독일과 벨기에에서도 점점 캔맥주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수입맥주 대부분이 캔으로 들어오는 이유도 품질유지 때문이다. 병맥주가 여전히 유지되는 건 ‘시각적 전통’과 ‘식탁 위 감성’이라는 상징적 이유가 크다.

◆ 결론: 맥주병의 색은 ‘디자인’이 아니라 ‘과학’이다

맥주병이 갈색인 이유는 단순한 색상의 취향이 아니라, 맥주의 품질을 지키기 위한 과학적 설계다. 햇빛 속 자외선이 맥주의 향과 맛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최적의 선택이 바로 갈색 유리다.

녹색병은 마케팅적 상징, 투명병은 디자인적 실험에 가깝다. 하지만 맥주의 본질인 ‘맛과 신선도’를 최우선으로 본다면, 갈색병이야말로 맥주를 가장 잘 지키는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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