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인리스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식기와 주방용품부터 건축 자재, 자동차, 항공기, 의료 기기까지 생활과 산업 전반에 깊이 스며 있는 금속 소재다. 이름처럼 ‘녹슬지 않는다(stainless)’는 장점 덕분에 위생적이고 내구성이 뛰어나 다양한 환경에서 활용된다. 하지만 스테인리스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재질은 아니다. 성분 배합과 제조 방식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고, 그에 맞는 적절한 용도가 존재한다. 흔히 304, 316, 430 같은 숫자 코드로 표시되는데, 이 차이를 이해하면 제품을 선택할 때 훨씬 더 합리적이고 안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스테인리스의 기본 원리
스테인리스강은 기본적으로 철(Fe)에 크롬(Cr)을 최소 10.5% 이상 첨가해 만든 합금이다. 크롬이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해 ‘산화 크롬 피막’을 형성하면서 금속 표면을 보호하는데, 이 얇고 투명한 보호막이 바로 스테인리스의 부식 방지 비밀이다. 여기에 니켈(Ni), 몰리브덴(Mo), 망간(Mn), 탄소(C) 등 여러 원소를 더해 다양한 물성을 부여한다.
성분과 미세조직에 따라 크게 오스테나이트계, 페라이트계, 마르텐사이트계, 듀플렉스계, 석출경화계 등으로 분류된다.
오스테나이트계 (Austenitic)
가장 널리 쓰이는 스테인리스로,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크롬 16~26%, 니켈 6~22%가 들어가고, 일부 강종에는 몰리브덴이 첨가된다.
- 특징: 뛰어난 내식성과 내열성, 높은 연성, 우수한 용접성. 비자성체라 자석이 붙지 않는다.
- 대표 강종: 304, 316
- 활용처: 싱크대, 식기류, 의료기기, 화학 플랜트, 배관 등
특히 316은 몰리브덴이 포함돼 바닷물이나 염분에 강해 해양 구조물, 선박, 고급 주방용품에 많이 쓰인다.
페라이트계 (Ferritic)
크롬을 11~30% 함유하고 니켈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 특징: 내식성이 오스테나이트계보다는 떨어지지만 고온 산화에 강하고 가격이 저렴하다. 자성이 있으며 열전도율이 우수하다.
- 대표 강종: 430, 446
- 활용처: 자동차 배기계 부품, 주방 후드, 가전제품 외장, 건축 내장재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전자레인지 외부 패널이나 냉장고 외장에 사용되는 소재가 바로 페라이트계다.
마르텐사이트계 (Martensitic)
크롬 11~18%에 탄소를 일정 비율 첨가해 만든 강종이다.
- 특징: 기계적 강도가 높고 열처리로 경도 조절이 가능하다. 내식성은 다소 낮으며 자성이 있다.
- 대표 강종: 410, 420, 440
- 활용처: 칼, 가위, 공구, 베어링, 터빈 블레이드
특히 440 계열은 ‘스테인리스 칼강’으로 불리며 주방용 고급 칼에 널리 사용된다.
듀플렉스계 (Duplex)
오스테나이트와 페라이트 조직을 절반씩 가진 독특한 구조다.
- 특징: 높은 강도와 내식성을 동시에 지니며, 염화물 환경에서 발생하는 응력 부식 균열에 특히 강하다. 자성이 있고 용접성이 까다롭다.
- 대표 강종: 2205, 2507
- 활용처: 석유·가스 파이프라인, 해양 구조물, 화학 플랜트, 고강도 산업 설비
가격은 다소 높지만 해양과 같이 부식이 심한 환경에서는 필수적인 소재다.
석출경화계 (Precipitation Hardening)
열처리 과정에서 석출 강화를 통해 높은 강도와 내식성을 모두 확보한 스테인리스다.
- 특징: 강도와 내식성이 균형 있게 뛰어나 항공우주 산업에서 선호된다.
- 대표 강종: 17-4PH
- 활용처: 항공기 부품, 터빈, 첨단 기계 부품
항공기 동체나 엔진 부품처럼 극한 조건을 견뎌야 하는 분야에서 활약한다.
숫자로 보는 스테인리스 등급
우리가 흔히 접하는 숫자 코드에는 각각 의미가 있다.
- 304: 가장 대표적인 오스테나이트계. ‘18-8 스테인리스’라 불리며 크롬 18%, 니켈 8% 조합. 싱크대, 냄비, 수저, 의료기기 등 위생이 중요한 곳에 널리 쓰인다.
- 316: 크롬 16~18%, 니켈 10~14%, 몰리브덴 2~3%. 염분에 강해 고급 식기, 의료용 임플란트, 해양 구조물에 사용된다.
- 430: 페라이트계로 저렴하고 자성이 있어 가전제품 외장재에 많이 쓰인다.
- 440: 마르텐사이트계로 칼과 공구 같은 날붙이에 활용된다.
스테인리스 관리가 필요한 이유
스테인리스라고 해서 절대 녹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염분이나 강산, 강알칼리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 부식이 진행될 수 있다.
- 사용 후에는 세제를 깨끗이 헹궈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한다.
- 음식물 얼룩은 즉시 제거하고 마른 천으로 닦아내야 한다.
- 철 수세미로 강하게 문지르면 보호막이 손상될 수 있으므로 부드러운 스펀지를 쓰는 것이 좋다.
- 바닷가처럼 염분이 많은 환경에서는 주기적인 세척과 건조가 필수다.
스테인리스는 성분 조합과 조직에 따라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오스테나이트계는 생활용품과 의료기기에, 페라이트계는 가전제품과 자동차에, 마르텐사이트계는 칼이나 공구에, 듀플렉스계와 석출경화계는 해양·항공 같은 특수 산업에 각각 적합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식기 하나에도 소재의 과학과 산업적 선택이 숨어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