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수도권 주택시장의 과열을 잡기 위해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이른바 ‘갭투자’를 사실상 금지했다. 전세보증금을 이용해 집을 사던 구조가 막히면서 부동산 시장의 투자 흐름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부동산 투기 차단과 실수요자 중심의 거래 질서 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갭투자란 무엇인가
‘갭투자’란 전세를 낀 상태로 주택을 구입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시세가 10억 원인 아파트에 세입자가 8억 원의 전세로 살고 있다면, 매수자는 자기자본 2억 원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 이후 시세가 오르면 2억 원의 투자금으로 큰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이 구조가 주택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2020년 이후 전세가격이 급등하면서 갭투자가 급속히 늘었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이용해 매매자금의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투자자는 여러 채를 이 방식으로 보유하며 ‘갭 리스크’를 키웠고, 전세사기·깡통전세의 원인으로도 지목됐다.
이번 ‘전세끼고 매매 금지’의 핵심
정부는 2025년 10월 중순 발표한 부동산 안정화 대책에서 ‘전세를 낀 매매’를 제한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핵심은 주택을 살 때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은 원칙적으로 매수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세입자가 거주 중인 상태에서 전세계약을 승계해 매입하는 행위 자체가 금지된다. 예외는 오직 가족 간 증여나 상속 정도만 인정된다. 기존처럼 전세보증금을 그대로 넘겨받는 거래는 원천적으로 막히는 셈이다.
또한 실거주 의무 기간이 2년으로 강화됐다. 이제 집을 매입하면 반드시 본인이나 직계가족이 실제로 2년 이상 거주해야 하며, 그 기간 동안 전세를 놓거나 임대를 줄 수 없다. 실거주 요건을 지키지 않으면 취득세 감면, 양도세 비과세 등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및 세제 환수 조치가 내려진다.
이 조치는 서울 전 자치구와 경기 일부 지역(성남, 과천, 하남, 수원, 용인 등 주요 도심권)을 중심으로 적용된다. 향후 집값 추이에 따라 부산, 대전, 세종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금융권 대출 규제까지 병행
이번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당국도 전세 관련 대출을 전면 차단하는 방안을 병행했다. 기존에는 ‘소유권 이전을 조건으로 한 전세대출’을 통해 세입자의 전세금을 인수하며 집을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 방식이 금지된다.
쉽게 말해 전세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려는 매수자는 전세대출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또한 주택담보대출 한도도 줄었다.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내 15억 원 초과 주택의 대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25억 원 이상 초고가 주택의 경우 잔금대출 한도가 2억 원으로 제한된다.
이로 인해 전세를 낀 ‘레버리지 투자’ 자체가 막힌 셈이다. 과거에는 세입자 보증금과 대출을 더해 자기자본 10~20%로 아파트를 사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최소 60~70% 이상을 현금으로 직접 부담해야 한다.
갭투자 규제의 배경
정부가 이런 강력한 조치를 내린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집값 과열이다. 전세를 낀 매매가 급증하면서 실거래가가 실제 수요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했다. 투자 목적의 거래가 늘어나면 시장 전체가 불안정해지고, 실수요자가 집을 사기 어려워진다.
둘째,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문제다. 전세금을 이용한 갭투자가 급증하면서 집값이 하락할 경우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고가 속출했다. 정부는 이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전세를 낀 매입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셋째, 가계부채 관리다. 갭투자는 대부분 대출과 전세보증금을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금융 리스크가 커진다. 주택가격이 조정될 경우 다수의 투자자가 손실을 떠안게 되고,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 구조로 전환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투기성 수요를 줄이고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 질서를 세우겠다”고 밝혔다. 전세를 낀 거래가 줄면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 목적의 매수세가 줄어들고, 실제 거주를 위한 수요가 중심이 된 거래만 남게 된다.
실제 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거래 규제로 인해 전세가 있는 매물을 포기하고 있으며, 실거주 가능한 공실 아파트나 신축 분양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들 사이에서도 “전세 낀 매물은 거래가 사실상 막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만 부작용 우려도 존재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부작용을 지적한다.
첫째, 전세공급이 감소할 수 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던 임대 목적 매수자들이 빠지면 시장에 공급되는 전세물량이 줄어든다. 이는 전세가격 상승이나 월세 전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중산층의 내집마련 통로가 막힐 수 있다. 갭투자는 그동안 실수요자에게도 일종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 초기 자본이 적은 젊은 세대가 전세를 낀 채로 집을 사고, 몇 년 후 시세차익으로 갈아타는 구조였다. 이런 전략이 불가능해지면 자산 형성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셋째, 거래절벽 우려다. 대출규제와 실거주 의무가 맞물리면서 매수세가 줄고, 시장 전체의 거래량이 급감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다주택자나 고가주택 보유자 중심으로 매물이 늘어날 경우 시장의 가격 왜곡이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실거주자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실수요자라면 이번 조치를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투기수요가 빠지면 단기적으로 매매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실거주 요건을 충족해야 하므로 다음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 매수 후 2년 이상 직접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 기존 세입자가 있는 집은 매수 불가이므로, 잔금 시점에 공실인 주택만 계약할 수 있다.
- 대출 한도 축소로 인해 실제 자금계획을 충분히 세워야 한다.
- 세제 혜택 요건이 실거주 기준과 연계되므로, 주택 보유 기간과 거주 기간을 정확히 관리해야 한다.
시장의 방향성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 거래 감소와 전세가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무리한 갭투자나 전세레버리지를 통한 투기 수요가 줄어들면,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이 완화되고 실수요자가 중심이 되는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번 ‘전세끼고 매매 금지’는 단순한 거래 규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부동산 시장의 핵심이었던 전세-매매 연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제도적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은 단기적 충격을 겪겠지만, 정부의 목표대로 ‘갭 없는 실거주 중심 시장’으로 재편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안정성과 투명성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