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헝다그룹(에버그란데)이 2025년 8월 25일 오전 9시부로 홍콩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된다. 거래소는 8월 8일 상장취소를 통보했으며, 마지막 거래일은 8월 22일로 공시됐다. 2024년 1월 홍콩 고등법원이 내린 청산 명령 이후 18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친 뒤 내려진 최종 결정이다. 한때 ‘부동산 황제’라 불리던 헝다는 결국 16년 만에 증시 무대를 떠나며, 중국 경제의 성장과 거품을 동시에 보여준 대표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됐다.
1. 창립과 초고속 성장
헝다는 1996년 광둥성에서 쉬자인(许家印·후이카옌)에 의해 설립됐다. 그는 농촌 출신으로 시작해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쳤다. 2009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뒤 모은 자금으로 전국 주요 도시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까지 진출했다.
주요 특징은 ‘선분양 후건설’ 모델이었다. 분양대금으로 현금을 먼저 확보한 뒤 이를 다시 토지 매입과 신규 개발에 투입해 성장의 속도를 높였다. 여기에 은행 대출, 신탁, 그림자 금융까지 동원하면서 자금 회전율을 극대화했다.
그 결과 2019년에는 계약판매 6,010억 위안, 분양면적 5,846만㎡를 기록하며 중국 최대 민영 디벨로퍼로 군림했다. 창업자 쉬자인은 포브스 중국 부호 1위에 오르며 ‘개인 성공 신화’까지 썼다.
2. 사업 확장과 부채 누적
헝다는 부동산을 넘어 금융, 헬스케어, 스포츠, 전기차 등으로 손을 뻗었다. 광저우 축구단 인수, 전기차 브랜드 설립, 헬스케어 타운 개발 등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갔지만 대부분 수익성은 미약했다.
이 과정에서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21년 기준 헝다의 총부채는 약 3,000억 달러(약 415조 원)에 달했고,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400%를 넘어섰다. 무리한 차입 경영이 ‘성장의 엔진’이자 동시에 ‘위기의 뇌관’이 된 셈이다.
3. 위기의 시작 – ‘세 가지 레드라인’
전환점은 2020년 중국 정부가 도입한 ‘세 가지 레드라인’ 정책이었다. △부채비율 70% 미만 △순부채비율 100% 미만 △현금/단기부채 1 이상을 충족해야 차입이 가능했는데, 헝다는 세 조건 모두에서 기준을 넘었다.
돈줄이 막히자 유동성 위기는 곧바로 현실로 다가왔다. 전국 1,300여 개 프로젝트가 자금난으로 중단되거나 지연됐고, 미완공 아파트 인도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번졌다.
4. 디폴트와 청산 명령
2021년 12월, 헝다는 달러채 이자 지급을 놓치며 공식적으로 ‘제한적 디폴트’ 판정을 받았다. 이후 채권단과 구조조정 협상을 이어갔지만 실현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2024년 1월 29일, 홍콩 고등법원은 청산 명령을 내렸고 같은 날 오전 10시18분부터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헝다는 18개월 내 거래 재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결국 2025년 8월 상장폐지가 확정됐다.
5. 청산 현실과 오너 리스크
청산 집행 18개월 동안 현금화된 자산은 2억5천만 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채권자들이 신고한 채권액은 450억 달러에 달한다. 일부 미술품, 고급 차량, 클럽 멤버십 등이 팔렸지만 본토 법인의 핵심 자산은 규제와 법적 절차에 묶여 있어 회수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오너 리스크도 컸다. 쉬자인 전 회장은 2023년 불법 범죄 혐의로 조사 대상이 되었고, 2024년에는 평생 증권시장 진입 금지 및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핵심 자회사 헝다부동산도 허위 공시와 불법 채권 발행으로 거액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6. 상장폐지와 남겨진 교훈
헝다의 상장폐지는 끝이 아니라 ‘긴 청산의 시작’이다. 미완공 주택 완공이라는 사회적 의무와 해외 채권자 상환이라는 재무 의무가 충돌하는 구조 속에서 회수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 투자자 손실은 사실상 확정적이다.
헝다 사태는 몇 가지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 첫째, 선분양과 고레버리지 모델은 유동성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정책 변화 하나가 자금 사슬을 끊을 수 있다.
□ 둘째,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위험 분산이 아니라 관리 리스크 확대일 수 있다.
□ 셋째, 회계 투명성과 지배구조는 위기 시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7. 중국 경제에 남긴 파장
헝다는 한때 중국 GDP의 2%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였다. 그 몰락은 업계 전반의 신용경색으로 이어졌고, 지방정부 재정과 가계 자산, 소비심리까지 흔들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중앙정부의 제한적 부양책만으로는 구조적 조정이 불가피하다.
■ 타임라인으로 보는 헝다 16년
- 1996년: 광둥성에서 헝다 설립
- 2009년: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전국 확장 본격화
- 2019년: 계약판매 6,010억 위안, 최고 전성기
- 2020년: ‘세 가지 레드라인’ 정책 시행, 자금경색 시작
- 2021년 12월: 달러채 이자 미지급, 제한적 디폴트 선언
- 2024년 1월 29일: 홍콩 법원 청산 명령, 거래 중단
- 2025년 8월 25일: 홍콩거래소 상장폐지 확정
헝다그룹의 몰락은 단순히 한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중국 경제가 지난 20여 년간 의존해온 부동산 주도 성장 모델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다. 천문학적인 부채를 끌어다 키운 성공은 정책 변화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졌다. 2025년 8월 25일, 헝다의 상장폐지는 곧 중국 부동산 거품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