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민이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강북 지역에서 LPG 차량을 몰고 다니다 보면 주유소는 곳곳에 보이는데, 정작 LPG충전소는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내부순환로와 강변북로 사이 구간 — 성북, 종로, 마포 북단, 동대문, 은평 일대 — 에서는 거의 ‘공백지대’에 가깝다.
남쪽 강변북로나 강남 쪽으로 내려가야 겨우 충전소를 찾을 수 있다.
왜 이 구간에는 LPG충전소가 사라지다시피 했을까.
그 이유는 단순히 “수요가 적어서”가 아니다. 서울의 도시 구조, 안전 규제, 부지 제약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① 좁은 부지, 고압가스 시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LPG충전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훨씬 까다로운 부지 조건을 요구한다.
액화석유가스를 저장하기 위한 고압 저장탱크(통상 8~10톤급) 를 설치해야 하고,
폭발 위험을 대비해 주거지·학교·지하철 등 주요 시설로부터 일정 거리(최소 50~100m) 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내부순환로~강변북로 구간은 대부분 오래된 주거밀집지와 상업지대가 뒤섞인 고밀도 지역이다.
도로와 도로 사이의 폭이 좁고, 건물 간 간격이 짧다.
즉, 물리적으로 LPG충전소를 세울 수 있는 빈 땅이 거의 없다.
서울시의 도시계획 기준상, 이러한 구간은 ‘준주거지’나 ‘상업지역’이 대부분으로
위험물 저장시설 설치가 원칙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결국 강북 도심권은 도시 구조 자체가 LPG충전소 입지를 허용하지 않는 형태인 셈이다.
② 안전 거리 규제가 특히 엄격한 지역
LPG충전소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과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다음 시설로부터 일정 거리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 학교, 병원, 어린이집, 주택가 → 100m 이상
- 철도·지하철 노선 → 50m 이상
- 주요도로 및 고가도로 하부 → 설치 불가
- 하천부지나 제방 인근 → 설치 제한
내부순환로와 강변북로 구간은 바로 이 조건에 거의 다 걸린다.
도로 위로는 고가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아래로는 하천(홍제천, 중랑천, 정릉천, 청계천)이 흐른다.
양쪽으로는 아파트와 학교가 빽빽하다.
즉, 법적으로 설치 가능한 부지가 사실상 ‘0’에 가깝다.
③ 환경 및 소음 민원도 설치의 걸림돌
LPG충전소는 폭발 위험뿐 아니라 소음, 냄새, 교통유입 문제 때문에
도심 내 설치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시의 ‘위험물 시설 민원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강북권에서 LPG충전소 신설이 검토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실제 인허가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업 초기 단계에서 주민 반대에 부딪혀 모두 철회되었다.
이 때문에 충전소는 상대적으로 민원이 적은 강변북로 바깥쪽(성수, 상암, 가양, 하남 등) 혹은 도심 외곽(남양주·구리·고양) 으로 밀려났다.
④ 자동차 연료 트렌드 변화로 인한 구조적 쇠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서울에는 LPG충전소가 100곳이 넘었다.
택시의 90% 이상이 LPG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하이브리드·전기택시가 늘어나면서 LPG 수요가 급감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서울 시내 LPG충전소는 35곳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고,
이 중 대부분이 강남·서남권에 몰려 있다.
강북권은 경제성이 낮아 신규 설치를 추진할 사업자가 거의 없다.
또한 2020년 이후 LPG가격이 휘발유 대비 경쟁력을 잃으면서,
소규모 충전소는 운영수지 악화로 폐업하거나 CNG(압축천연가스) 또는 전기충전소로 전환했다.
⑤ 고가도로·지하차도 밀집 구조가 ‘위험시설’ 입지에 부적합
내부순환로~강변북로 구간의 또 다른 특징은 입체 교통 구조다.
고가도로 아래나 지하차도 인근은 폭발 사고 시 대피가 어렵고, 진압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소방청과 서울시의 위험시설 입지 심의에서 거의 예외 없이 탈락한다.
실제로 2013년, 성산동 일대 한 주유소가 LPG겸용 충전소로 전환을 신청했으나
“인근 고가도로 구조물과의 이격거리가 40m로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허됐다.
이후 유사 사례가 반복되며, 도심 고가도로 인근에는 사실상 신규 설치가 불가능해졌다.
⑥ 서울시의 ‘도심 위험시설 제한 정책’
서울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도심 위험물 시설 축소 정책’**을 추진해왔다.
도시 재생 및 생활 안전 강화를 위해,
도심 속 주유소·가스충전소·폐기물처리시설의 신규 설치를 제한하고 외곽 이전을 유도한 것이다.
이 정책은 특히 강북 지역의 도심 밀집 구간에 강하게 적용됐다.
덕분에 최근 10년간 강북권에는 신규 LPG충전소가 단 한 곳도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기존 충전소 5곳이 폐쇄되거나 일반 주유소로 전환됐다.
⑦ 대안은 ‘복합충전소’ 또는 ‘외곽 집중형’
서울시는 부족한 LPG 인프라를 보완하기 위해
외곽순환도로 주변(상암, 수색, 월계, 구리 방면)에 복합연료 충전소를 확대 중이다.
LPG·수소·전기 충전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형태다.
그러나 강북 도심권에는 여전히 부지 확보와 안전거리 문제로 설치가 어렵다.
이에 따라 택시나 LPG 화물차 운전자들은
상암·성수·가양·구리 방면 충전소를 이용하거나,
야간에 외곽 주유소로 이동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결론 — “못 세우는 게 아니라, 세울 곳이 없다”
결국 서울 강북의 내부순환로~강변북로 구간에 LPG충전소가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경제성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
도심의 고밀도 구조와 엄격한 안전 규제,
그리고 주민 민원과 행정적 제약이 겹친 결과다.
즉, **“설치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설치할 땅이 없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교통 동맥 한가운데 자리한 이 구간은
결국 ‘도시의 안전과 편의가 부딪히는 상징적 공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