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사상 하면 흔히 생선, 나물, 전, 탕, 과일을 떠올리지만, 지역마다 그 구성은 조금씩 다르다. 특히 경상도 제사상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음식이 빠지지 않고 오른다. 바로 ‘튀김’이다. 금빛 바삭한 식감과 함께 특유의 고소한 향이 퍼지는 이 튀김은 단순한 부식이 아니라, 경상도의 제사 문화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전통 음식이다.
경상도 제사상, 다른 지역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나라 제사 문화는 지역에 따라 식재료와 상차림이 꽤 다르다.
서울과 경기 지역은 깔끔하고 단정한 구성을 중시하고, 전라도는 다양한 산해진미와 풍성한 양을 강조한다. 반면 경상도는 **‘단정하면서도 실속 있는 상차림’**이 특징이다.
이 지역 제사상에는 유독 ‘튀김’이 올라가는데, 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전통적 습관에서 비롯됐다.
경상도 제사상은 흔히 고기전, 생선전, 채소전, 탕국, 포, 과일, 식혜, 그리고 튀김으로 구성된다.
특히 튀김은 다른 지역에서 잘 보이지 않는 요소로, 부산·대구·경북 일대에서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왜 ‘튀김’이 제사상에 올라왔을까
경상도에서 튀김이 제사상에 오른 이유는 여러 설이 있다.
하나는 **“기름진 음식이 복을 불러온다”**는 지역적 믿음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기름은 귀하고 값비싼 재료였다. 기름에 음식을 튀긴다는 건 그만큼 풍요와 넉넉함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또 다른 이유는 **‘산과 바다를 모두 가진 지역 특성’**에 있다.
경상도는 동해안을 끼고 있어 신선한 생선과 해산물이 풍부했고, 내륙에서는 들기름과 콩기름이 넉넉했다.
이 때문에 제사상에 해물, 고기, 채소를 각각 튀긴 음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됐다.
마지막으로, 튀김은 **‘온기를 유지하기 쉬운 음식’**이기도 하다.
제사를 준비할 때 미리 조리해도 바삭한 식감을 오래 유지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제사 음식 중에서도 준비가 수월한 편이었다.
어떤 튀김이 올라갈까
경상도 제사상에는 특정한 튀김 종류가 있다.
보통 오징어튀김, 새우튀김, 고추튀김, 가지튀김, 고구마튀김이 대표적이다.
지역과 가정에 따라 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튀김 모둠’ 형태로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 오징어튀김 – 가장 전통적이고 상징적인 제사 튀김. 동해안 지역에서는 거의 필수다. 오징어를 손질해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히고 노릇하게 튀긴다.
• 새우튀김 – 복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새우의 곡선 모양이 ‘장수’를 뜻한다고 전해진다.
• 고추튀김 – 매운맛이 아니라 ‘액운을 막는다’는 의미로 올린다. 속을 비워 튀기거나 다진 고기를 넣기도 한다.
• 고구마튀김 – 단맛이 있고 금빛 색이 나서 재물과 풍요를 상징한다.
• 가지튀김 – 속이 부드럽고 기름을 잘 흡수해 ‘은은한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는다.
튀김은 일반적으로 제사상 오른쪽 하단, ‘적(煮)’류 옆이나 전과 함께 놓는다. 전과 달리 튀김은 색이 선명하고 보기 좋아 제사상의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도 한다.
“전은 서울, 튀김은 경상도”
서울이나 충청 지역에서는 전을 여러 종류로 부치는 반면, 경상도에서는 전보다는 튀김이 중심이다.
이 차이는 조리 방식에서 비롯됐다.
경상도는 전통적으로 들기름과 콩기름을 넉넉히 쓰는 지역이었다.
이에 비해 수도권은 참기름 중심의 볶음과 구이가 발달했다.
즉, 경상도는 기름 요리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튀김이 제사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튀김에도 예법이 있다
제사상에 올릴 튀김은 일반 분식집의 튀김처럼 두껍고 기름진 형태가 아니다.
얇게 튀겨 색이 연하고, 기름기가 과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짙은 색으로 튀기면 ‘탄 음식’으로 여겨져 상에 올리지 않는다.
또 제사 음식은 양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소금이나 간장에 찍지 않고 그대로 담아낸다.
기름은 들기름과 식용유를 섞어 사용하는 집도 많다.
들기름의 고소한 향을 더하면서도 식용유의 깔끔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세대가 달라도 이어지는 ‘튀김의 상징’
요즘 젊은 세대는 제사를 간소화하고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해 튀김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상도 제사상에서 튀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전통 때문만은 아니다.
**“금빛 기름에 튀긴 음식은 조상께 드리는 정성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릴 적부터 제사상에서 오징어튀김이나 새우튀김을 집어 먹던 기억이 가족의 추억으로 남아,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제사상에 튀김을 올리며 ‘그때의 온기’를 되살린다.
전통 속 현대, 튀김의 새로운 변주
최근에는 전통 제사상에 올리는 튀김이 현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표고버섯튀김, 연근튀김, 두부튀김 등 채식 기반의 메뉴가 늘었고,
식물성 오일을 활용하거나 에어프라이어로 조리해 기름기를 줄이는 집도 많아졌다.
기본적인 정신은 그대로 유지하되, 시대와 건강을 고려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바삭한 한입에 깃든 정성”
경상도 제사상에서 튀김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조상께 올리는 공경의 마음, 가족이 함께 나누는 정,
그리고 한 해의 풍요와 무탈을 기원하는 생활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다.
노릇하게 튀겨진 오징어 한 점 속에는 경상도 사람들의 성실한 손맛과 진심이 녹아 있다.
계절이 바뀌어도, 세대가 변해도,
경상도 제사상 위의 금빛 튀김은 여전히 ‘정성과 풍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